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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각시를 찾아 봄볕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새봄의 맑은 산소를 흠뻑 취하는곳

이경민 | 기사입력 2018/05/14 [14:45]

수덕각시를 찾아 봄볕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새봄의 맑은 산소를 흠뻑 취하는곳

이경민 | 입력 : 2018/05/14 [14:45]

충남 예산군 덕산면을 지나다 보면 윤봉길 의사 고택이 보이고 고택을 지나 구비 돌아 서쪽을 바라보면 차령산맥의 낙맥(落脈)이 만들어 낸 덕숭산(德崇山)이 보인다.

 

▲ 본지 기자(최영희, 박희정 기자)

 

  북으로는 가야산(伽倻山), 서로는 오서산, 동남간에는 용봉산(龍鳳山)이 병풍처럼 둘러쌓인 중심부에 서 있는 덕숭산 자락에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선지종찰(禪之宗刹)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 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 하였는데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이 여인을 구경하러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 까지에 이르렀다. 이 불사가 원만 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다.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 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봄볕 어느날 수덕사를 방문 그 옜날 수덕사의 역사를 생각하며 산사의 맑은공기를 마시며 지금도 어디에서 바라보고 지켜줄 수덕각시를 생각한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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